2009년 03월 04일
관용에 대하여...
관용에 대하여 - Michael Walzer

미국의 유명한 공동체주의자 왈쩌의 저서이다. 이 책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2학기 현대정치철학 수업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내공 부족과 미천한 독해실력으로 인해 저자가 하려고 했던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5년 뒤 2009년 1월 예전 수업 자료를 정리하던 도중 왈쩌에 대한 필기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공동체주의자 왈쩌에 대한 짤막한 필기가 나의 호기심을 다시 일으켰다. 이는 이 책의 구매로 이어졌고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우리가 보통 관용을 생각하면 ‘이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관용은 다수집단이 소수집단에 대해 베푸는 행위라 말하기도 한다. 이는 이성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을 믿은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밝혀져 있고 왈쩌는 이것을 주목하였다.
왈쩌는 관용이라는 단어의 뜻이 ‘참다’에서 온 것에 주목하였다. 왈쩌는 고대 로마제국이 대표적인 관용을 시행한 정치체제라고 이야기한다. 즉 중앙집권세력과 지방속주간의 관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마제국은 속주가 자치적이 되는 것을 참았다. 속주의 사람들은 세금을 내는 것을 참았다. 참음으로 인해서 양측은 목숨을 부지했고, 평화를 얻었고 서로 함께 살게 되었다. 관용은 참게 되어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다. 관용의 화려한 수사에 젖어있던 우리에게는 보다 현실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시대이든지 항상 그 시대의 특수성이 있다고 하는 왈쩌의 경험적이며 상대적인 시각은 로마의 통치논리마저 관용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관용은 박해와 지나친 공포를 종식시키지만 사회조화를 위한 공식이 아니다. 라는 왈쩌의 말은 현실에 대한 왈쩌의 감수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말이다. 관용은 작동하는 것도 베푸는 것도 아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서로가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일뿐이다.
# by | 2009/03/04 00:02 | Story 1.5 | 트랙백 | 덧글(0)






